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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시지프스의 바위 교육

by skyfox 200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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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교육’이란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식 가진 사람 치고 교육 때문에 속을 썩인 경험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고도 좀체 개선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니 걱정만 쌓일 따름입니다. 도대체 언제나 되어야 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될지 막막한 심정입니다.

우리 교육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혁신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처럼 사람들의 의견이 각양각색인 경우가 드물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어느 쪽 의견이 맞는지 검증해 볼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답이 없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는 절망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정부와 보수진영 사람들은 시장원리의 도입만이 우리 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서로 경쟁하게 만들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듯, 교육에서도 그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이 발휘될 수 있다는 믿음이겠지요.

그들은 ‘3불정책’이 우리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들 사이에 학력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무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입니다. 대학이 자기 학생을 마음대로 뽑지 못하게 만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불평합니다.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왜 3불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의 폐지가 어떤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3불정책에 대해 너무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3불정책은 어쩔 수 없이 채택할 수밖에 없는 고육책입니다. 그런데도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억울하게 매 맞는 ‘3불정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3불정책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양 말하지만, 아무리 따져 봐도 결국 그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납득시키고 싶었습니다.

3불정책이 버젓이 살아 있던 참여정부 말기에도 대학들은 교묘한 수단으로 이를 피해갔습니다. 면접이나 논술고사를 감추어진 본고사의 형태로 변질시키는 동시에, 내신 반영률을 현저히 낮춰 고교등급제 금지의 실질적 무력화를 꾀했습니다. 저는 이런 꼼수를 쓰는 대학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참기 힘든 분노를 느꼈습니다. 대학이 갖는 사회적 책무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무책임한 일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신, 수능과 관련된 오해 그리고 진실>에는 그와 같은 제 분노가 여과 없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내신 반영률을 낮추는 편법을 쓰는 대학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내신성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고교등급제를 채택하는 것은 교육자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임을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학들은 더 이상 꼼수를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대학들이 마음대로 입시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까요. 또한 고교평준화의 기본 틀을 부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고교등급제 금지도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보수진영의 오랜 꿈이었던 자율과 경쟁이 3불정책을 몰아내고 새로운 교육의 기본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율과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기대입니다.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자율과 경쟁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섣부른 자율과 경쟁은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최근 고려대학교의 수시모집을 둘러싼 극도의 혼란은 앞으로 닥칠 더 큰 혼란의 서주곡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구상에 본질적인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특정계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 특정계층이 부유층이라는 것은 구태여 밝힐 필요가 없겠지요. 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해 기존의 교육제도를 뜯어고치려 하는지도 분명하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개혁인가?>에는 이와 같은 제 의문들이 조목조목 제시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의문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영어교육을 그토록 중시하느냐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시대에 영어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영어교육에 대한 편애는 누가 보아도 도에 넘칩니다. 그리고 영어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에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초등학생에게까지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는 희한한 발상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영어몰입교육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는데요. 그러나 정부의 영어교육 강화방안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영어 공교육 강화 - 무엇이 문제인가?>는 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안대로 밀고 나간다면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 이상으로 영어를 중시하는 풍조는 거의 사대주의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이런 사대주의는 정부뿐 아니라 언론기관과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력 일간지가 대학을 평가할 때 영어 강의의 비중을 평가항목 중 하나로 포함시키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실제로 영어 강의가 얼마나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요.

영어 강의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교육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아니 실상을 잘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론기관이든 대학이든 그렇게 뻔한 사실을 모를 리 없으니까요 <영어 강의가 대학교육을 망친다>는 이와 같은 대학의 위선을 고발하려는 의도에서 쓴 글입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저까지 입을 다문다면 진실은 영원히 파묻혀 버리고 말지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교육은 건국 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내게 될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공교육 충실화는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는 한편, 어린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헤매는 딱한 상황은 한층 더 심화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런 제 예측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시장주의자의 고백>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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